[번역 인용]화이트헤드 철학 최단 입문
*이 글은 이이모리 모토아키(飯盛元章) 씨의 ホワイトヘッド哲学最速入門을 번역한 것이며,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이트헤드 철학 최단 입문
이 글에서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화이트헤드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을 살았던 영미권 철학자이다. 그는 논리학・수학 연구에서 출발해 60세가 넘어서야 형이상학 연구에 착수했다. 그의 형이상학 시기의 대표작인 『과정과 실재』는 20세기 철학서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난해한 텍스트다. 수많은 용어를 동원해 세계 전체의 존재 방식을 고해상도로 그려내려는 이 책은 너무도 장엄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제시해 읽는 이를 압도한다.
이 글에서는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연속과 단절 : 화이트헤드의 철학』(連続と断絶─ホワイトヘッドの哲学) 1장의 요약 버전이다. 이 글은 불필요한 텍스트적 증거와 세세한 논의 등을 걷어내고 최소한의 용어와 논증만 남긴 최단 경로의 화이트헤드 입문이 될 것이다.
목차
1. 화이트헤드의 적수, <실체 철학>
2. <유기체 철학>으로
3. <유기체 철학>의 특징
1. 화이트헤드의 적수, <실체 철학>
먼저 화이트헤드의 적수라고 할 수 있는 입장부터 살펴보자. 화이트헤드는 <실체 철학>을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화이트헤드는 이와의 투쟁을 통해 대표작 『과정과 실재』에서 자신의 형이상학적 체계 <유기체 철학>을 제시하게 된다.
미리 결론을 말해두겠다. 화이트헤드는 우주가 개별적인 실체로 이루어진다는 발상(실체 철학)을 비판하고,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하는 우주의 형상(유기체 철학)을 제시한 것이다. 비관계적 실체에서 관계적 유기체로 가는 것, 이것이 화이트헤드가 자기 대표작을 통해 제시한 치환이다.
그렇다면 실체란 무엇일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화이트헤드는 데카르트의 정의를 인용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실체란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사물도 필요로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데카르트 『철학 원리』)이다. 즉, 다른 것과 관계함이 없이 그 자체로 존속하는 것이 실체이다.
"실체"는 단순히 철학자만이 품고 있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안정적으로 존속하는 사물이 넘쳐흐른다. 머그잔과 안경, 우리의 정신, 신체 기관, 가로수, 아스팔트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순간순간 전혀 새로운 것으로 생성변화하고 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들은 시간을 가로질러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의 핵심은 변화를 피하며 존속하고, 그 표면적인 성질만이 변화한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림 1). 실체 철학은 존재에 관한 이러한 소박한 관점과 친화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체의 무엇이 문제인가? 화이트헤드는 크게 두 가지 비판을 세운다.
첫 번째 비판은 이론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존재하는 것을 그 자체로 독립적인 실체로 간주하면, 그러한 실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 방식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실체 철학에서 실체들 사이의 관계는 계속 골치 아픈 문제로 남게 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실체 철학이 상식적인 경험을 건져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존재자를 자기-동일성을 유지한 채 존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의 경험은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 매번 변태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8월의 삼림지대에 가서 곤충들이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어렴풋이 듣는다면, 주위의 자연으로부터 여러 가지 느낌이 자신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에 압도당할 것이다."(화이트헤드, 『과정과 실재』) 우리의 경험 속에는 주변 존재자의 영향이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다. 실체 철학으로는 이러한 일상적인 경험의 존재 방식을 건져 낼 수 없다.
2. <유기체 철학>으로
이렇게 화이트헤드는 실체 철학을 비판하고 유기체 철학의 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실체의 철학에서 유기체의 철학으로의 전환은 다음의 두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1단계: 존속하는 실체(그림 1)를 무수한 순간의 계열로 해체한다(그림 2). 2단계: 선행하는 모든 순간이 새로운 순간을 위한 구성요소가 된다(그림 3). |
화이트헤드는 먼저 1단계에서 통시적으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며 존속하는 실체를 무수한 순간으로 해체한다. 예를 들어 머그잔은 매 순간의 머그잔으로 해체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 순간적인 것으로 해체된 존재를 "현실적 존재자"(actual entity) 혹은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라고 부른다(그림 2의 실선의 원 전체). 현실적 존재자란, 어느 정도의 시간적 폭을 가진 순간적 사건이며, 이 우주의 궁극적인 구성단위다. 화이트헤드는 모든 유형의 존재자(인간의 경험, 신체의 세포, 머그잔 등)를 모두 동등하게 현실적 존재자로 간주한다.
2단계 설명으로 넘어가자. 현실적 존재자는 단순히 개별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선행하는 과거의 모든 현실적 존재자가 새로운 현실적 존재자에 영향을 미치고 그 구성요소가 된다. 화이트헤드는 과거의 현실적 존재자를 구성요소로 수용하는 조작을 "파악"(抱握, prehension)이라고 부른다. 파악은 의식 이전의 비인식적 조작으로, 과거의 존재자를 인과적으로 받아들이는 조작을 의미한다.
그림 3의 점선의 원으로 표현된 현실적 존재자가 지금 막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현실적 존재자는 과거의 모든 현실적 존재자(실선의 원)를 파악(화살표)을 통해 수용한다. 예를 들어, 머그잔에 손을 뻗는 경험이라는 현실적 존재자가 지금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면, 거기에는 한순간 전의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의 경험이 개입하게 된다. 더 나아가 머그잔,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 고양이, 화장실, 슈퍼마켓, 지구, 초대형 블랙홀 등 모든 순간의 모든 존재자가 지금 여기의 경험에 개입하게 된다. 현실적 존재자는 이 모든 것을 무수한 파악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파악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완결된 존재자(실선의 원)가 된다.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무수한 파악이 통합되는 과정을 "합생"(合生, concrescence)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어원적으로 "함께 성장한다"를 의미한다. 즉, 무수한 파악은 합생("구체화"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의 과정을 거쳐 함께 성장하고, 최종적으로 구체적인 통합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유기체 철학은 먼저 1단계로 실체를 무수히 많은 현실적 존재자로 해체한다. 이에 따라 하나의 실체에서 통시적 연속성이 일단 해체된다. 그리고 2단계, 일단 해체된 무수한 순간은 파악에 의해 종횡무진으로 얽혀진다. 즉, 실체는 무수한 현실적 존재자로 해체됨으로써, 철두철미 파악이라는 관계성을 통해 이해되는 것이다.
3. <유기체 철학>의 특징
지금까지 유기체 철학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기술해 왔다. 그 특징으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모든 유형의 존재자가 현실적 존재자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자라는 단 하나의 유(類)가 있다는 가정은 유기체 철학이 따르고자 하는 우주론의 이상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유형의 존재자는 모두 현실적 존재자이며, 유형의 차이는 합생 과정의 차이로 설명된다. 인간의 의식적 경험은 돌 등에 비해 고도의 복잡한 합생 과정을 거침으로써 성립한다. 하지만 모든 존재자는 현실적 존재자라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평등하며, 각자가 고유한 주체적 활동의 중심점이다. 돌은 인간의 사고가 부재한 세계에서 스스로 다른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다. 유기체 철학은 비상관주의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은 과도한 관계성을 관철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네 가지 측면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임의의 현실적 존재자에 있어 다른 현실적 존재자와의 관계는 "내적 관계"이다. 내적 관계란 본질적 관계를 의미한다. 즉, 현실적 존재자는 자신을 구성하는 현실적 존재자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바로 그 존재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현실적 존재자는 선행하는 다른 모든 현실적 존재자와 관계한다. 화이트헤드는 "[...] 다른 모든 현실적 존재자를 비롯한 우주의 모든 항은 임의의 현실적 존재자의 구조에서 구성요소를 이룬다"라고 말한다.
셋째로, 관계는 단순한 성질의 전달이 아니라 관계항의 "내재"이다. 예를 들어 나무를 지각하는 경험 속에는 단순히 나무의 성질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 자체가 내재하여, 이 경험을 내부에서 구성하는 것이다.
넷째로, 현실적 존재자는 관계로부터 태어나 관계 한가운데로 던져진다. 선행하는 것과의 관계에 의해 탄생한 현실적 존재자는, 합생 과정을 완성하면, 이번에는 그 자신이 후속하는 것과의 관계 한가운데로 던져져 구성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이처럼 화이트헤드는 모든 존재자가 과도한 관계성에 의해 긴밀하게 얽혀 있는 연속적인 우주의 형상을 그려냈다.